요새 제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마태복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점점 말씀을 재밌어 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오늘은 4장 부분을 가르쳤죠.
4장은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시는 장면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시험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40일의 시간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어떤 상황가운데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 있는 의미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던 것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닮아가라는 예를 보여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사단이 속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40일 주야를 금식하신 예수님께 다가가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속여서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고 합니다.
너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냐? 떡덩이가 되게 해 봐라. 이런 식으로 접근하죠.
이런 식의 접근은 에덴 동산에서도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너희더러 동산 나무의 모든 과일를 먹지 말라고 하였느냐?(3:1) 이렇게 물어보죠.
이런 식의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존심을 건들게 하고, 기분나쁘게 만들어서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이나 존재의 의도대로 따르도록 만들곤 합니다.

약간 비약적인 이야기지만,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있죠. 어떤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에게 사단은 이런 마음을 불어 넣습니다. 너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인데, 그 정도도 못하느냐? 이런 일을 함으로 너의 힘과 능력을 보여봐 이런 식의 질문입니다.
이런 식의 마음을 불어 넣음으로 사단은 인간을 파괴의 길로 몰아 넣으려고 합니다.

이 질문은 두 번째 시험에서도 나옵니다.

첫번째 질문의 두번째 부분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는 부분입니다.
바로 앞부분에 예수님이 심히 굶주리셨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굶주렸을 때 가장 원하는 것이 먹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셨는데, 못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사단이 떡덩이를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요구에 대해서 내가 사단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겠다라는 말을 하죠. (구체적인 성경의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4:4)

우리가 지치고 피곤할 때, 항상 우리에게 약한 부분으로 가서 죄책감을 느끼도록 사단은 유도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알콜 중독으로 빠져든다든가, 어떤 사람은 금지된 약물 복용, 어떤 사람은 자극적인 영상등에 빠져 버립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우리에겐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것처럼 자유 의지의 사용을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가서 자신을 멸망의 길로 파괴되는 길로 몰아 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이런 예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떤 학생이 너무 힘들어서 사단이 이런 속임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힘들지? 자살하는 건 어때?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사단의 길을 구분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단은 생명을 파괴하는 쪽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인도합니다.
따라서, 죽이고 멸망하고 파괴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은 사단에 의해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좌우지간 학생에게 이런 파괴적인 생각이 들 때에는, 자신이 자살할 수 있는 일종의 자유의지를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내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가운데 나를 맡기겠다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두번째 시험은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에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재밌는 것이 사단도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는 구절은 시편 91편 11,12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밌는 점은, 성경 구절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게 우리의 상황에 무조건 맞는 구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구절 어느 하나를 딱 떼어서 그걸 자기가 원하는 목적에 사용한다면 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파괴하는 말씀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이 이런 식으로 말씀을 사용합니다.
집에 찾아와서 성경 어느 구절을 보여주고 기독인들에게 보여주고, 성경을 믿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믿는다고 하죠. 그리고 나서는 성경 구절 이런게 있는데 이것을 믿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물은다음 사람들을 속입니다.
제가 여러 차례 말씀 드렸다시피, 성경은 전체적인 맥락, 문맥에 따라서 봐야지 한 구절만 떼서 사용하면 저의 어떤 주장도 다 근거로 댈 수 있습니다.
사단은 이런 전략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속이는 데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변개시켜 이용하는 거죠. 좌우지간 조심해야 합니다.
이 두 번째 시험도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상실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두번째 시험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사용하였습니다.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이렇게 사람들이 소리쳤죠.
마귀의 이 두 번째 시험이 바로 이 부분과 정확히 일치되지 않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다면 우리 죄를 대속하지 않으셨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두번째 시험에 대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면서 대적합니다.
예수님을 이런 시험 속에 넣으면서 하나님을 자기가 움직이게 하려는 등의 의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단이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마치 하나님 위에 서려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죠.

세번째 시험은 사단이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주리라고 말합니다.
참 재밌는 것은 이 세상을 사단이 자기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천하 만국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데,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으로 미혹하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자신을 섬기라고 합니다.
사단이 속이는 영이라는 것을 여기서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면서 대적하고 있죠.

복음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구원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예수님의 그 사명에서 벗어나게끔 속이길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약할 때
또는 우리가 어느 지위에서 힘이 있을 때,
사단은 우리를 유혹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살게끔 만들고 하나님을 따르지 말고 사단의 길을 따르길 원합니다.
또한, 사단이 아무 세력도 없는데, 사람들이 속임에 넘어가 사단이 시키는대로 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분명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이 자유의지를 멸망의 길로 가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길로 가는데 사용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길로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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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사실 천국이란 개념이 공간적인 개념이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관계적인 개념이다.
물론, 공간 개념도 배제되지는 않는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다. 찬양가사처럼.
그렇다면 우리의 영이 육체를 떠날 때 가게 되는 곳은?
그곳도 천국이다.
사실 두 가지의 천국 개념(관계적, 공간적)을 구분하고 싶지만 마땅한 용어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셨을 때
천국을 보여 주셨다.

어떤 병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치유 받았다.
어떤 귀신 들린 사람은 에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귀신이 떠나가고 온전해 졌다.
어떤 죽었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어떤 굶주렸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풍성한 먹거리를 얻게 되었다.
어떤 자기 만의 학문 세계에 집중했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을 뜨는 학문의 진일보를 이루게 되었다.
어떤 자기만의 부를 추구했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나누는 것의 행복에 대해 깨닫고 실천하게 되었다.
어떤 소외되었던 어린이들이나 여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더이상 소외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았다.
어떤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천대받았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더이상 멸시받지 않고 소중한 존재로 여김받았다.
어떤 도덕적으로 문제있었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더이상 정죄당하지 않고 다시 회개하며 참된 삶을 살 수 있는 길로 인도받았다.
어떤 ...
어떤 ...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기 전에도 하나님의 천국은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먹고 살 길이 없었던 과부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서 먹을 것이 채워졌다.
노예 상태로 고민하던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한 인도하심으로 인해 해방되었다.
기타 등등....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더 크게 급박하게 중요하게 다가왔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오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는 부분적이다.
현재 어떤 사람들은 병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치유받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치유받지 못한다.
현재 어떤 사람들은 가난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가난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다.
등등...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할 지 그려지지 않는가?
이 어떤 것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완전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적들과 가르침들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공간적, 시간적 제약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 맛보지는 못했다. 부분적이었다. 그러나, 부분이 완전함을 채우기에 모자라지 않았다.
그 부분을 맛 본 사람들을 통해(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천국을 맛 본 사람들을 통해), 그 소식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꿈꿔지고 희망을 가지게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천국이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천국이 확장된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고 소망하고 기대한다.
그리고, 완전한 천국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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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http://babyhome2.blogspot.com/

Every day we can hear lots of stories that the girl babies are killed by their parents, 90% of the murder no one can find, that much clandestinely do that. Sometimes some beside people inform to the police or government officer, in everyday news paper we can see lots, here I give two baby murdering which I collect from the news paper.


on January 2007 we heard a terrible story which is happened to a new born girl baby, just we bring it before you to pray for the people those who are doing the terrible things for the girl babies, the same thing is happening alover in India, Particularly in Tamil Nadu.

We read a real story from he news paper on 4th of January 2007, really our heart was broken, one mercy less parents put a girl baby in the dustbin, that village is exactly where we got our 3 babies, when I read this news in the news paper I ca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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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riend and asked him how it happen, he told that parents was expecting a boy baby, but they got a girl, so they decided to kill it, in the midnight when all the people are sleeping they brought the baby to the out side of thevillage and put in a dust pin, may be they will be killed it before they do that, because of the midnight no one see that, before the morning dogs came and ate the baby, “what a sad” in the morning when people see that they informed to the police, police came and asked the people who did this murder, no one answered, police warned them we will find who did this murder and put them in prison, and also they advised do not do this again, if you don’t want girl babies, please give to any baby homes, they will care them, then they took the left over death body for postmark .

We praise and thank God for he helps us to save this 4 babies from the same village, near by this village we conducted a awareness program for this baby murder, I shared the important of the girl babies and how much God loves the babies, many peo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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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came and listened the program, again I want to conduct some more “Infanticide Eradication Awareness Programme” we are sure that one day God will change their mind and bring them into his kingdom, last time when we conducts this program, some people came forward and told this is very new things we heard, we will rise up against to this baby murder, “Praise the Lord”please keep us in your prayer, because of your prayer we could do this things for the Lord, we appreciate your heart, we need your prayer and encouragement, if y0u visit this link! please write back to us some thing from you, that will encourage us to keep moving into the kingdom of God.


Killed a baby and hide infrond of the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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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June 2007 one family kiled a 4 days new born girl baby and hide infrond of the home, The neighbors asked them where your baby is. They told she died because of sick, we hide in the earth yesterday night, but the people understand that they killed the baby, whoever someone informed to the police, the next day morning police came to the house and asked the parents where you hide the baby, how she died? They gave some complicated answers; police didn’t believe, arrested the husband and asked him what you did for the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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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he told the truth, just newly they marriage, they were expecting a boy baby, but they got a girl baby, in his family no one like girl baby, if they care this baby brings lots of financial expensive when she grow, also she is curse to their family, so they tried to kill as soon as she born, but in the hospital many people was watching them, the 3rd day they discharge from the hospital and came to home, then they were discussing that what should do this baby and how we can kill! They tried put in the dustbin, some people was sitting there so they couldn’t do that, then they used different method,
In the midnight they give "poison to the baby", after 20 minutes baby died, then they dig in the earth and hide in front of the home. Her mother only gave the poison to the baby, she don’t like girl baby, (You see them in the picture, first one is baby’s Mother SELVI, second one is baby’s Father VADIVEL and the third one is baby’s Grandmother OCHAMMAL)

Next day morning when people ask us we gave wrong information; we don’t know who inform to the police, what a terrible thing! Police arrested three of them and put them in jail, they release baby’s mother, because only 6 days back she had delivery, after 2 weeks again arrest her and put in jail.
About the 3 pictures:

The first picute is the baby's mother showing to the police where and how they hide the death body of the baby. The second picture is: Baby's death body covering in a Covering in a plastic paper. The third picture is: Murderer, Baby's Father, Mother and Grandmother.

Even though still people are doing the same, we conduct some awareness program and talked with the people that how much God loves the babies, still we are working on that to change their foolish mind, please keep us in your prayer, we want to save the babies those who are dying by their parents, so far we have 4 lovely girl babies with us, really we are doing very hard work to care them, but God is strengthening us, we urge you to keep us in your prayer, we are praying for the financial needs, if God provide that, we will save many more babies and care them for God, we are sure that one day they will be a great testimony and be glorify God’s name,

Always we expect your input, advice and encouragement, if you read this link! Please write back something to us that will encourage us to keep moving to the kingdom of God.
Here is our E-Mail ID:

With love in Him,
Russal & Kum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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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밤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어리신 분들도 있고, 그런 일이 실제적으로 발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상황에서 시간들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물론, 가게 된 과정가운데 실수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또한 좋은 측면들을 가로막아서 매도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세상의 많은 나라에는 정말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숨 한 번 쉬는 짧은 순간에도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고, 병에 걸려 최소한의 의료 혜택만 받으면 살 수 있는데도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낙태로 매년 500만명 이상의 여자 아기들이 살해 당하고 있습니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695436&section_id=104&menu_id=104

낙태 뿐만 아니라 태어난 여자 아기들도 그냥 길에 버려져서 죽어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20년동안 무려 1000만명 이상의 여아가 살해 당했다고도 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2191715571&code=970207

제 인도 친구인 Russal이 버려진 여아를 살리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보면 버려져서 죽은 여자 아기들의 사진이 나옵니다.
http://babyhome2.blogspot.com/2007/02/dear-friends-greetings-from-in-jesus.html

어떤 분들은 한국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나라로 가서 그런 활동을 하느냐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은 그 나라들보다 모든 면에서 사정이 좋습니다.

당장 사람이 세계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다른 나라 일이라고 그냥 내버려두기엔 우리는 상대적으로 누리고 있는 행복이 많습니다. 또한, 어찌보면 우리의 행복이라는 것을 위해서 환경이 열악한 나라 사람들의 희생이 대가로 지불되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노르웨이 사람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북한 어린이의 굶주림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노르웨이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도 아니고 정말 보통 노르웨이 시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교육받았고, 주변에 병 걸린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습니다.

그 먼 나라에서도 북한의 어려움들에 대해 인도주의적인 관심을 일반 사람들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참 많이 놀랬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좌우지간 이 아프간 사건에서 평소 한국 기독인들의 성숙하지 못했던 모습들로 인해 이번 일이 마녀 사냥식으로 매도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아프간을 사랑했고 아프간의 병든 사람들, 외로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길 바라고, 더불어 세계의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빨리 평화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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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모임에 bedts 팀들 파송이 있어서 갔습니다. 항상 bedts 사람들은 저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화요모임에 제가 친한 한 형제와 함께 5시 30분쯤 갔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 있어서 놀랐습니다.
자리를 찾아 적당한 위치에 저와 그 형제 가방을 놔두고 밖에 잠깐 배를 채우러 나갔었습니다.
갔다가 들어왔는데, 어떤 자매님이 제 자리에 앉아 계시더군요.
제 가방과 저랑 같이 온 형제 가방은 옆쪽으로 옮겨져 있구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자리를 먼저 맡았습니다. 두 칸 뒤에 자리가 있으니 그쪽에 앉으시면 어떨까요?
우리 둘 자리가 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어서요.
이렇게 얘기했는데, 기분이 나쁘셨나 봅니다. 좌우지간 그 자매님이 뒤로 이동하셨는데, 그 이후로 제 맘이 못내 불편했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저의 권리라고 하더라도 양보했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이 너무 들었습니다.
예배 끝나고 혹시라도 보게 되면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끝나고도 못 만났습니다.
좌우지간, 이런 불편도 감수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많이 반성하면서
화요모임 찬양끝나고 설교 시간에 계단에 앉아 있는 자매님들께 자리를 양보하고 계단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어느 컴퓨터 대리점에 노트북 수리를 맡겼습니다.
맡긴지 두 달이 되도록 고치지 못하고 수리 업체 핑계를 댑니다.
그러면서 두 달 지난 후 저보고 전화를 하면서 수리 업체에 재촉하랍니다.
수리 업체는 부품을 외국에서 주문해야 하는데 단가가 안 맞아서
그 노트북 같은 부품을 찾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제 노트북은 굉장히 오래 되어서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이거 기약 없는거 아니냐? 그러니 그렇다고 합니다.
좌우지간 15만원이라는 돈을 대리점에 수리 비용으로 맡겼는데, 그 쪽에서 발뺌을 합니다.
끝까지 싸워서 받아내려다가 기독인으로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포기한다고 하면서 그냥 노트북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지만, 그 15만원을 가지고 끝까지 집착하는 그 대리점 주인을 볼 때도 안타깝습니다.

제 집 앞은 일방 통행 도로입니다. 제 집앞에 차를 주차 잠시 동안 주차했는데(이곳에는 자기 주차자리는 없구 그냥 먼저 차를 주차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건너편 집에서 차를 빼라고 전화를 합니다. 화를 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동안 주차하지 않았구요 요 며칠만 주차한건데, 계속 차 주차했다는 건 오해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들을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윽박지르더군요.
생각같아선 화를 내고 싸우고 싶었지만, 그냥 그분께 알겠으니 그분의 차를 계속 거기다 주차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제 돈을 들여서 저는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겨우 거주자 주차 자리를 신청하고 거기다 주차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면들이 있습니다. ^^;;;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바빠서... ^^;;;
아래는 지난 주일 화천의 교회 학생부에서 설교했던 내용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2:6, 누가복음 1:46-55)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베들레헴의 상태를 한글 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마태복음 2:6

이 구절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베들레헴이라는 땅의 규모나 상태 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땅은 그다지 유명한 땅이 아니고 한글 성경 번역에 의하면 유대 고을 중 가장 작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영어 번역은 이것과는 약간은 다르지만 (least among the rulers of Judah; NRSV) 의미상 베들레헴이라는 곳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베들레헴이 가장 작지 아니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마리아의 노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잉태하고 친척의 집에 갔을 때, 엘리사벳이라는 여인이 마리아를 보고 여자 중에 복이 있는 여자이며 태중에 아이가 복이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때 말한 내용이죠.
누가복음 1:48절에 보면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고 말하고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천함이란 NRSV에서는 lowliness라고 표현하고 있고, NASB에서는 humble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부적 상태의 낮음을 표현하는 일차적 의미이외에도 내부적 상태의 심리를 표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좌우지간, 마리아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좋은 계층에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이제는
위의 두 가지의 공통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들레헴 - 이름 없는 곳
마리아 - 비천하다고 자신을 생각함

에서

베들레헴 - 더이상 작은 곳이 아니다.
마리아 - 만세에 복이 있다 일컬으리라.


이 전환을 이끌어 내게 된 과정 가운데 있는 분은 누구실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환경적으로 베들레헴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마리아와 같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무시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이상 이름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작은 존재가 아닙니다. 비천한 존재가 아닙니다.
존귀하며, 복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성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모든 것들이 이성을 넘어선 차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이성을 주신 이유는 이성을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지 그것을 마비시키라고 주신 것은 결코 아니다.
이성에 대한 필요 이상의 거부감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많은 장애를 주고, 또한 이단으로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전에 어떤 한 선교사님을 만난적이 있다.
그 선교사님은 King James Version 에 대해 거의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King James Version 을 줄여서 KJV 라고 적겠다.
KJV 만이 절대 오류가 없는 성경이며 문자적으로도 절대 틀리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성경 버젼을 읽을 때 문자 하나 하나 자체가 살아서 역사하며 감동을 주는 것이 대단하다고 강조하셨다.

어떻게 보면 참 신앙이 좋아보이시고 그 열성이 나무랄데 없이 성경에 충성적이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금방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이 애초에 기록될 때,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이전에 한 번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의 그 무한한 뜻과 정확한 개념들이 정확한 단어로 표현될 수 없을 뿐더러, 원어 성경을 번역하여, KJV을 만들어도 정확히 번역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시를 영어로 번역할 때 가장 정확한 영어 단어로 옮긴다할지라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상식을 넘어선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의 맹신은 부작용을 낳고 다른 사람을 배타하며 기존 기독인들에 대해서 비난을 하기 쉽다.

얼마전에 집에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전도하기 위해 왔다.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키셨다고 하면서 유월절을 왜 안지키느냐? 안지키면 구원이 없느니 그런 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성경의 예수님이 유월절 지키자라고 언급한 부분을 가르키면서 오늘날에도 유월절의 그 날짜 그대로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큰 소리를 쳤다.
그 성경 구절을 마태복음 26장 18절에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키자라고 하신 부분을 언급했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유월절을 언급하신 일은 유월절 날짜 자체가 중요-물론,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면 유월절에는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해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성만찬을 베푸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실 피와 찢기실 살에 대한 부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언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면, 유월절 자체에 대한 부분은 한 줄이지만, 성만찬에 대한 부분은 17절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만 절기로 지키신 것이 아니다. 바로 앞부분에 보면 무교절에 대한 언급도 나와 있다. 즉, 예수님은 유대인의 절기를 규례를 따라 지키고 계신 것이다.
좌우지간 전도하러 집에 왔던 사람들에게 기분이 별로 안 좋았던 것은 자기들만 얘기를 하고 내 얘기는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남은 인격적인 상호 반응인 것이지 자기 이야기만 쏟아내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그런 태도는 참 답답하게 만든다.
그분들이 바로 성경에 대해서 알고 구원의 진리를 바로 알게 되길 정말 마음으로 바라고 기도했다.

좌우지간,
성경을 문맥을 따라 읽어야지 어느 한 부분만 따와서 그것을 자기의 해석에 맞게 짜집기 해 놓은다면 어떤 주장도 다 할 수 있다.
그것이 성경을 구절 그대로 맹신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우리가 일반 책을 읽는다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요지를 파악하는데, 성경은 최소한의 그런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책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례가 많이 있다.

그런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 이단을 발생하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고, 최소한 기독인들이 그런 어의없는 이단들에게 혹하지 않도록 성경을 전체적 맥락에서 읽어보길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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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화제를 주었고 감동을 주었던 영화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고난을 당하셨는지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고통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느끼라는 취지의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정말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신앙의 회복등 긍정적인 측면을 주었지만, 난 다른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 또한 많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영화의 목적이나 시간상의 제한으로 인하여, 예수의 고난 측면에 초점을 맞추게 된 부분인데, 그럼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측면을 소홀히 하였다.
사실,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정 및 세상에서의 태어남과 사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부터 부활까지 이르는 것이며 결국은 영광스러운 부활 생명, 영생에 대한 부분으로 하이라이트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부분을 다루는 데는 미약했다.
즉, 우리에게 눈물을 짜내기는 했지만 웃음은 거둬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예전에 SBS(School of Biblical Studies)에서 공부할 때, 4복음서에 대해서 성경을 그대로 읽어가며 영화가 전개되는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서에 따라서 다양한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참 유머와 웃음이 넘치고 사람들에게 농담도 하면서 열정적으로 다가갓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었던 복음서의 영화였다.(어떤 복음서에 대한 비디오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SBS direacror도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였다.
달라스 윌라드 이야기를 어쩌다 많이 하게 되는데, 그는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 웃음에 대해 이런 말을 적어 놓았다.
 
"(초략) 웃음은 진정한 공동체에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니 웃음이 건강에 그토록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웃음은 구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든 피조 세계에서 구속보다 더 큰 부조화는 없기 때문이다. 구속이 이를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시126:1-2)"
그리고 예수에 대해 말하기를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듯이 세간에 굳어진 예수의 이미지는 그분이 재미있고 매력 있고 사랑스러운 분임을 전혀 느낄 수 없게 한다. 복음서 도처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분께 보인 반응을 보면 그 이미지가 완전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인간적 관점에서 그분은 당대 지도자들이 인기를 시기하여 죽일 만큼(마27:18) 매력 있는 사람이요 강력한 연사였다. 그분은 유머의 대가이셨고, 여느 훌륭한 연사와 다를 바 없이 듣는 이들이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머를 즐겨 사용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파티의 손님 목록에 그분을 올릴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예수를 지식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만큼 함께 지내기 즐거운 명랑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복있는 사람 펴냄, 324p.]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또한 많은 믿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들의 열정과 그들의 사명감을 보았을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을 지녔을까?
아마도 많은 환경의 어려움이 있지만 정말 그들의 모습 속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을 것이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성만찬 예식을 할 때 분위기는 교회사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즐거움 속에서 성만찬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부활에의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 생명, 그리그 그 풍성함, 천국의 기쁨등이 그 안에 넘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그 즐거움이 그들의 얼굴속에 가능한가? 또한 나의 얼굴속에 가득한가?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다는 말이 이웃 사랑과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제자화 하고 변화시킨다는 것과 대치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오늘날,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의 부조리나 이웃에 대한 소외 현상등을 고치려고 하는 어떤 기독인들의 모습에는 그 문제에 대한 무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으로 그 영역들을 제자화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기쁨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넘쳐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처에서, 그리스도의 잔혹사에 초점을 맞추는 형식의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우울하다. 어둡다. 무엇인가 그들을 얽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고난 받고 죽임 당하신 것이 그토록 원하셨던 우리를 향한 생명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예수님은 자신이 그런 고통을 당하셨어도 아마 우리들을 향해서는 이 세상 가운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 풍성하게 흘러나오는 기쁨과 평안을 원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불균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갔던 수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기쁨을 얻게 되었던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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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from india.
I want you to pray for my friends' task to save more baby girls' life with the help of Holy Spirit.
And they need financial things so it would be better to pray the flowing of financial stuffs well.
whenever I hear God's doing through their sacrifices for saving life, I thank God and them.
they are really God's cooperators for spreading God's kingdom in this world.
bless all guys who visit my web site!
have a great day in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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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one 4 days Baby Jenifer”
 
 

 Dear Friends…

Greetings in Jesus name, hope you all doing well, this is our privilege to let you know that we saved one more girl baby’s life, “Praise the Lord”

As you well know we are saving newborn girl babies from the death, some district people of Tamil Nadu, killing their girl babies as soon as born, they believe that the girl baby is curse to their family, previously we saved “Four  girl babies” yesterday we got one more lovely girl, now we have 5 babies. 

Great Story about this new Baby:

From 20th to 23 of June 2007 I was in a baby murdering village called “Andipatty” 95% of the village people are Hindu, most of the people are killing their girl babies, no one can ask them why! We got this 5 th baby in the same village.

When I preach with them, In Jesus name I rebuke and notify very boldly, baby murdering is a sin as well as against the law, if you kill a baby government will punish you, sometime you can hide from government, but you can’t hide from God, always he is watching you, all the children belongs to God. More than 65 people was listening me, end of the meeting one family invite us to their home and treat with some tea and snacks, they told: most of this village people don’t like girl babies, every month we can see many babies dying, your sharing was very useful to us, from today I will talk to the people when they trying to kill the baby. Really I was so happy from them and return to my home. I leave my mobile number with them.

The same day night one family had a girl baby, according to their belief, if a girl baby born within June 17 to July 17, it not fit to their family and God, (read more) in Tamil that month call Aady, last year we got two babies in the same month (Grace and Angeline) both are doing well and growing fast “Praise the Lord” by the way, this couple was thinking to kill the baby, wife told: already we have two girls, so we no need one more girl,  also this baby born in “Aady” month, we kill her, but her husband told: before I come to the hospital one man came to our village and preached the baby murdering is sin, if you don’t want girl baby give to us, but do not kill, we can give to him, both decided and the next day morning the husband came to family where we had tea and snacks, he told we want to give our baby to that man who preached yesterday evening “Praise the Lord” that family called me and told everything,

After I come from the meeting, I had some dysentery, I was really sick, because too much travel without rest, Kumari also so busy with other 4 babies and really tired, we do not know what do! I asked him a favor, can you bring the baby to us for this time only, we are in very terrible situation, he told after an hour call me back, really we was praying and waiting for his phone call, as he told he called and told: we can’t bring in by bus or train, that is very hard, even we can’t get it, we hire a car and bring baby, you have to pay the bill, I agree and told them to hire a car and bring the baby safely, yesterday afternoon they reached our home with the baby, we paid 7,000 for car bill and paid 2,000 to that family, we value this precious baby more than money, she is so beauty and good health, just today we brought her to the hospital for the general checkup, she is alright.

We want to save many more babies lives like this, we urge you to keep us in your prayer, we have lots of financial needs, God has to  strengthen our financial status. Thanks for spent to your valuable time to go through this large mail, looking forward to hear from you…  

We love you and praying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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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love in Him, Russal-Kumari & Kids.




1-Grace 2-Angeline 3-Erika 4-Kelsey 5-Jeni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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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목사님을 본 적이 있는데, 싫다는 사람 억지로 잡아두고 그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라고 강요하여 고백을 이끌어냈고, 그러면서 이제 당신은 영생 받았으니 기뻐하라고 말하는 분을 보았다. 난 그 주변에 있으면서 그 강요당한 사람의 찡그리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영생이 주어지는 그 영광스러운 자리인가?

오늘날, 이런 모습들이 얼마나 기독교를 무례한 하나의 단순한 종교로 만들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기독교인화된 사람들의 변화되지 않은 즉, 중생(regeneration)되지 않은, 도덕적으로 문제있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기독교인들을 양성해 왔는지 모른다.

달라스 윌라드는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영생에 대해 언급한 구절은 요한복음 17:3절(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이 유일하다면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의 성경적 의미는 단순히 믿는 다는 고백이 아니라, 친밀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맺는 관계이며, 삶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영생이다. 영생이라는 것은 사후 세계를 믿는 사람들이나 또한 있다고 심증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있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개념이다.
기독교에서 영생을 사실 너무도 단순화 시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이야기하면 되는 것처럼 공식화하여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삶 속에서나 사회적으로 어떤 행동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아도 믿으니까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왜냐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그것이 곧 영생을 통행증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는 개념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스 윌라드는 이런 개념을 거부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영생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사실, 예수를 믿는 다고 이야기할 때, 성경에서는 예수를 성도들의 신랑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성도들을 신부라고 표현하고 있다. 결혼의 관계와 같이 예수와 성도들의 관계를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 서약을 할 때, 신부측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신랑을 믿고 따르며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취지의 서약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주로 영접하기로 한 사람들은 단순히 예수를 주로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런 형식적인 고백보다는(물론, 진심이 담겨 있는 고백이라면 상관없다.)
예수를 주로 따르기로 고백하십니까? 어떤 어려움이나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따르시겠습니까? 또한, 예수가 보여주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을 따르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따른 고백이 더욱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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