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꼽으라면
난 단연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진실하고 솔직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어제, 높은 뜻 숭의 교회 담임이신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가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그분에게 가식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의 상태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내어 놓고 사람들 앞에서 내어 놓았기 때문이다.
신앙을 우리는 가식적으로 만들 때가 많은 것 같다.
정작 삶이 힘들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하나님 앞에서 가식적으로 말하고, 감사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라가 정말로 고민되지 않으면서도 솔직히 나라의 문제들이 고민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말하지 않고, 오히려 고민되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기도할 때가 많다.
또, 개인적인 문제들이 힘들면서도
마치, 그런 것은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문제들을 아뢰지 않고
그냥 부담감에서 뭔가 이상적이고 고상하다는 기도 제목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 놓는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솔직하고 진실하고 싶다.
솔직하고 진실 할 때,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며,
그 사랑과 은혜를 깊게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향한, 이 나라를 향한,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먼저 글에서 하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실 것이 있다는 마음을 주셨는데,
그것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이다.
분노가 되면 분노의 목소리를, 불공평하다면 불공평의 목소리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 것이다.
시편 처럼...
오늘 아침에 시편을 기도했다.
읽는게 아니라
내 목소리와 감정을 넣어 시편 그대로를 기도했다.
시편이 내게 놀랍게 다가 왔다.
마지막으로 토머스 머튼이라는 사람이 쓴 글 중 일부를 적어 보겠다.
필립 얀시의 기도라는 책에서 인용되었던 부분이다.
난 단연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진실하고 솔직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어제, 높은 뜻 숭의 교회 담임이신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가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그분에게 가식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의 상태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내어 놓고 사람들 앞에서 내어 놓았기 때문이다.
신앙을 우리는 가식적으로 만들 때가 많은 것 같다.
정작 삶이 힘들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하나님 앞에서 가식적으로 말하고, 감사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라가 정말로 고민되지 않으면서도 솔직히 나라의 문제들이 고민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말하지 않고, 오히려 고민되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기도할 때가 많다.
또, 개인적인 문제들이 힘들면서도
마치, 그런 것은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문제들을 아뢰지 않고
그냥 부담감에서 뭔가 이상적이고 고상하다는 기도 제목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 놓는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솔직하고 진실하고 싶다.
솔직하고 진실 할 때,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며,
그 사랑과 은혜를 깊게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향한, 이 나라를 향한,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먼저 글에서 하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실 것이 있다는 마음을 주셨는데,
그것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이다.
분노가 되면 분노의 목소리를, 불공평하다면 불공평의 목소리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 것이다.
시편 처럼...
오늘 아침에 시편을 기도했다.
읽는게 아니라
내 목소리와 감정을 넣어 시편 그대로를 기도했다.
시편이 내게 놀랍게 다가 왔다.
마지막으로 토머스 머튼이라는 사람이 쓴 글 중 일부를 적어 보겠다.
필립 얀시의 기도라는 책에서 인용되었던 부분이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가 자기중심적이냐 아니냐에 특별히 개의치 않으신다.
주님은 그저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실 뿐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자신의 필요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교만이다. 마치 모자라는 게 전혀 없다는 듯,
하나님께 의지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뜻에 따라 물질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듯 행동하면서 자신을 하나님과 똑같은 수준에 올려놓으려는 또 하나의 교활한 술책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저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실 뿐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자신의 필요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교만이다. 마치 모자라는 게 전혀 없다는 듯,
하나님께 의지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뜻에 따라 물질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듯 행동하면서 자신을 하나님과 똑같은 수준에 올려놓으려는 또 하나의 교활한 술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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