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밤에 목욕을 잠시 하고, 동네 주변을 걸었습니다.

제가 사는 주변에는 음식점과 호프집들이 많습니다.

곳곳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있고, 왁자지껄합니다.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들이키며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 사람들처럼 모이기에 힘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비단 교회 예배 때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평일 저녁에도 그냥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힘을 북돋아주면 좋을텐데

항상 무슨 일이 있어야 만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냥 편하게 밤에 만나 차 한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그리워집니다.

'Intimacy With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을 위한 성경!  (0) 2009.10.17
나의 은사, 나의 브랜드(박안나 자매님)  (0) 2009.08.11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며.  (0) 2009.06.18
24시  (2) 2009.06.06
어떤 사람들은 참 웃깁니다.  (0) 2009.05.29

세상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배만 불리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또한 있습니다.

예멘에서 일어났던 한 자매님의 사고는 참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자신만 생각하기도 바쁜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묵묵히 살다가 하늘나라로 간 자매님!

당신의 그 고귀한 뜻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Intimacy With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은사, 나의 브랜드(박안나 자매님)  (0) 2009.08.11
목요일 밤 산책  (4) 2009.06.19
24시  (2) 2009.06.06
어떤 사람들은 참 웃깁니다.  (0) 2009.05.29
성령으로 사는 삶  (0) 2009.05.22
사도행전 5장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29절에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은 공회 앞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합니다.

30절부터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게 자신들의 삶 속에 어떻게 하셨는지를 그들이 체험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MSG에서는 31절을 하나님은 예수를 높이셨다. 이스라엘에게 죄 용서와 변화된 삶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죄 가운데 허덕이다가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생명력 없는 삶에서 구원하시고, 허무함과 절망 가운데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changend life를 주셨습니다.

 

32절에 사도들은 바로 이일에 우리들이 증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더불어, 성령께서도 이일에 대해 더욱더 확실하게 체험하도록 도와 주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용서함과 변화된 삶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선교현장에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수를 오직 사랑하며 예배하며 사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죄용서함과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예수를 생명의 주로 붙들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다시 한 번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르며 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람들의 어떤 말이 나의 삶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삶을 사는 믿음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길입니다.

 

'성경적 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접 얻은 것입니까?  (0) 2009.07.15
부흥에 대한 단상.  (0) 2009.07.09
그리스도인이란? (행 4:1-12)  (0) 2009.06.10
오순절 성령(행 2:1-4)  (0) 2009.06.03
가룟유다와 다른 제자들과의 차이점  (0) 2009.05.19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만이 대안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영육간에 많은 아픔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여러가지 환경 속에서 아픔을 겪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는 많은 균열이 있고,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곳저곳 우리는 찾아다닙니다.

조금이라도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 돌아다닙니다.

무언가 혜안을 가진 현자들을 만나기 위해 애쓰기도 합니다.

 

사회적인 갈등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문제 해결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 사람입니다.

다른 곳에서 문제 해결을 찾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으로 인한 성령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서 찾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참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어떻게 너 삶 가운데 그런 것들이 해결되었는가? 어떻게 사회속에서 그런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대안을 제시했지?라고 물을 것입니다.

4: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인 우리의 답변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됩니다.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 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 이름으로만 영육이 구원되고 사회가 구원될 수 있습니다.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렇다면,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느끼고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비밀을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항상 뒤쳐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선도해 나가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으며, 개인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그 해결 방법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문제에 허덕여 헤어나오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앉으십시요. 그리고 그 분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세련됨 보다는 투박함으로 살리라.

 

세련된 말들을 늘어 놓기 보다는

투박한 말속에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싶다.

 

세련된 이미지 속에 유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거친 이미지 속에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싶다.

 

세련된 분위기 속에 예배를 드리기 보다는

어설퍼도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싶다.

 

세련된 현대 감각속에 현재만 바라보고 살기 보다는

거칠어도 역사 의식을 가지고 진실을 나타내고 싶다.

 

세련된 이력 속에 무언가 이루었음을 드러내기 보다는

아무것도 아닌 이력 속에 이루어가고 있는 사람이고 싶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Brenton Brown (Humble King)  (0) 2009.08.02
평생 볼 성경 추천.  (0) 2009.07.07
하나님의 약속은  (1) 2009.04.18
은혜로 산다는 것은  (0) 2009.04.07
예수님이 사람들을 제자로 초청하신 이유  (0) 2009.04.03


미국 colorado springs ywam base에 있을 때 저희 부부를 여러모로 도와주셨던 한국 선교사님께서 24시라는 미국 드라마를 추천해 주시면서 리더쉽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DTS 훈련을 받으면서 틈틈히 24시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

 

어제 오늘 이어서 24시 7시즌을 다 봤습니다.

여러모로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을 많이 던져주는 드라마입니다.

혹시 안 보신 분들 있으시면 시간내서 1시즌부터 보세요.

1시즌에 24편씩 7시즌까지 나왔습니다.

 

 

'Intimacy With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요일 밤 산책  (4) 2009.06.19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며.  (0) 2009.06.18
어떤 사람들은 참 웃깁니다.  (0) 2009.05.29
성령으로 사는 삶  (0) 2009.05.22
로렌 커닝햄을 다시 만나다.  (2) 2009.05.20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성령께서는 오순절 날에 임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냐면, 성령의 역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이루어진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태초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창조가 시작되었고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때는 어떻습니까? 이미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작정하셨고, 또한 성령을 받을 은혜의 때입니다. 이미 하늘문이 열렸으므로 우리는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구해야 할 것입니다.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 홀연히라는 말은 영어로 suddenly입니다. 역시, 성령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의지대로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임하시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언가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닌 것으로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 노력해서 성령이 임한 것 같다고 느낄 때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노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무언가 외부적으로 초월적으로 오는 현상을 느낄 때, 바로 신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를 고백하게 됩니다.

 하늘로부터도 마찬가지의 맥락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도 역시 초자연적인 현상을 나타내어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더욱더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방언을 한 적이 있는데, 방언이라는 것이 나의 노력과 의지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시점을 계기로 인위적이지 않은 방언을 말합니다.) 개그 프로를 보시면 개그맨들이 외국 말을 그냥 만들어서 말하는 장면들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하늘로부터 온 방언이 아니라 내가 만든 방언입니다. 이런 방언을 말하면서 성령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suddenly라는 표현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방언을 진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뜻과 상관없이 suddenly 별안간 하게 되었다면, 여러분에게는 성령이 임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방언이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성령은 with us, in me 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교회에도 계시고, 집에도 계시고, 이 나라에도 계시고, 전세계에도 계십니다. 옆에 계신다는 의미이죠. 그러나, in me는 또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n me는 내 옆에 계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다는 의미이지요. with us는 우리 곁에 계시며 공동체적으로 우리를 이끄는 내 옆에 따라다니는 helper의 의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 불이라는 것도 with us의 개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갈라져서 각 사람에게 임하였다는 말은 with us에서 in me로 된다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with us는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in me는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과 능력들을 존재적으로 도와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내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과 내 곁에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도 역사하시길 원합니다. 공동체를 도우시는 영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또한 역사하시는 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성령께서 도와주십시요라는 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성령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다스려 주십시요라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임한 성령이 없으면 단지 구경꾼으로서의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저, 공동체에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만 보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성령으로 인해 능력있게 서 가는데, 자신은 허무함을 느끼거나 그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왜 이렇게 능력없이 서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바로 with us와 in me로 구분되어 역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성령에 의한 신비적인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제까지 우리 힘으로만 살고 우리 생각들로만 살고 우리 의지로만 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육체적 힘으로만 살았다면, 이제는 성령의 도우심이 거기에 더해집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의 외부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에 초자연적인 힘이 더해져서 나올 수가 있습니다.

 예전까지는 내가 아는 언어만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혀에 또한 나의 혀를 통제하는 뇌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더해지니 다른 언어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넘어선 무언가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이것이 무엇인가? 내 힘으로는 절대 안되는데, 무언가 초월적 존재가 내 안에 있어 나를 이렇게 인도하시는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2:1-4절까지는 성령이 공동체에 임함으로부터 -> 개인적으로 임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둘 다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무디는 19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부흥사였다.
무디는 부흥사에게 필요한 대중성과 구원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무디를 성공적인 부흥사로 만든 것은 성령체험이었다.


시카고에 사라 쿡(Sarah Cooke)이라는 성령 충만한 여전도자는 무디의 설교를 듣고는

“거친 돌 가운데 있는 다이아몬드”라고 평가했다. 그의 설교는 불타는 열정이 있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능력이었다. 그래서 쿡은 무디에게 가서

“나는 당신이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했다.

무디는 이 말이 거슬렸지만 매주 금요일 오후에 그녀를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후 무디는 쿡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성령세례를 사모하기 시작했다.

밤을 세워가며 마루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성령세례를 간구하였다.

어느날 뉴욕으로 집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그가 간구하던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다.

너무 강한 성령의 역사에 무디는 “이제 그만! 오 주여, 이것으로 충분합니다”고 외칠 정도였다.

이후부터 무디의 설교는 달라졌다. 무디는 “나는 다시 설교하러 갔다.

설교 자체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으나 수 백명씩 회개하기 시작했다.

만약 당신이 나에게 온 세상을 준다고 해도 내가 이 축복된 경험을 하기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디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무디의 사역이 성공한 비밀은 바로 성령의 역사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문제는 이 비밀을 얼마나 믿고 자신의 것으로 하는가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만한 사람이 되라고 명령하신다.

만일 우리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면,

우리는 우리의 특권 이하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무디-

 

 

☞ 무디의 성령 세례
1871년 10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인 시카고 대화재로 대도시 하나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또한 그것은 D. L. 무디가 힘들여 쌓아 놓은 모든 사역이 한순간에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화재는 파웰 홀(Farwell Hall), 무디가 담임하고 있던 일리노이 스트리트 교회(Illinois Street Church), 그의 집과 재산을 송두리째 앗아 갔다.
그러나 필생의 사역이 완전히 허물어진 거기서부터, 하나님은 더욱더 훌륭한 일꾼을 일으킬 작정이셨다. 평소에 무디의 기도 제목은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는 것이었는데, 화재 후에도 이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회심 후 중생의 체험이 있은 지 꼭 16년만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에 휩싸였다. 나는 하나님께 당신의 손을 멈추어 달라고 간청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그분의 사랑을 경험했다.”
그 후 무디는 똑같은 설교, 똑같은 방식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왔다. 섬기는 자는 바뀐 게 없었다. 이것에 대해 무디는 “나에게 온 세상을 다 준다 할지라도 이제는 축복을 경험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 부귀영화는 저울에 달린 조그만 먼지와 같다”라고 고백했다. 섬김에 필요한 성령을 구하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D. L. 무디의 Secret Power」/ D. L. 무디

 출처 : 생명의 삶 6월 3일자
1. 좋아하는 운동, 테이블 축구.

 

2. 좋아하는 음료수

 

 

최근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 ^^

어떤 사람들은

어떤 현상에 대해서 그렇게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는 것처럼 말하다가도

또,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다가도

정작 자신이 힘들어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그만큼 사람은 이중적입니다.

 

기독인들이 참 정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저는 인정합니다.

일부 기독인들이 어떤 현상에 대해서 정말 정나미 떨어지게 이야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냥 아픔에 대해서 같이 아파할 수 있고

힘든 것에 대해서 위로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정작 자신은 위로 받길 원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까칠하고 화살을 날리는 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서로를 불쌍히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슬퍼하는 자들과 같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언제 이 세상에서 계실 때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책망하면서 나아가셨습니까?

보듬어 안으시며 그토록 눈물 흘리시고 사랑하셨던 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정작 우리 안에 들보를 못 보는 그런 우를 범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Intimacy With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며.  (0) 2009.06.18
24시  (2) 2009.06.06
성령으로 사는 삶  (0) 2009.05.22
로렌 커닝햄을 다시 만나다.  (2) 2009.05.20
겸손이란  (0) 2009.05.02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가족들에게 또 국민들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분노와 대립이 심화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서로를 향해 분노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이 생전에 추구하셨던 좋은 뜻을 되새기며

우리는 묵묵히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오히려 생명이 가득한 곳 되기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자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살을 부추기는 사회적 병폐나 깨어짐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하여

어려운 난국을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서

: 저는 사람을 평가할 때는 소문을 듣고 평가하기 보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들이 무엇이라 말하는 지가 조금 더 객관적이라고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가도 그렇습니다. 가장 그와 같이 했던 사람들의 평가가 무엇인지를 보면 공정한 판단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들이 가장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보면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들이 거의 그 사람의 인간됨을 칭찬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여러분은 직장 상사와 직장 동료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어야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진짜 비도덕적이고 그런 사람에게 직장 상사였다고 해서 후한 평가를 쉽게 내리겠습니까?

(이 말을 적다보니 예수님 부활 후 각종 음해의 소문이 가득한 가운데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가 문제가 된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말할 수 있던 사람들은 바로 제자들이었지요,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멀리서 바라봤던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만들어 냈고 사람들이 제자들의 말보다 그들의 말을 믿었던 모습도 생각해 봅니다.)

+ Recent posts